투시 [투시] 투시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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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4,583회 작성일 16-08-02 21:31본문
Read: 1306, Vote: 15, Date: 2005/10/04 11:05:38
글 제 목 [투시] 투시란 무엇인가 1
작 성 자 문성호
제 1 장
투시란 무엇인가
투시(Clairvoyance)란 말의 자의(字義)적인 뜻은 ‘확연히 보는 것(Clear seeing)’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심히 왜곡되게 사용되어서 심지어는 시장판 약장사의 야바위 짓 따위를 의미하는 데 쓰이기조차 한다. 뿐만 아니라 좀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 말은 질적으로 판이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두루 지칭하고 있어서 간단명료한 정의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투시를 ‘영적인 비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지만 이보다도 더 오해를 일으키는 표현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그처럼 고상한 이름으로 대접받을 만한 여지를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이것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투시는 매우 흔히(언제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지만) 투청이라고 부르는 능력, 즉 보통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수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이 제목을 투청능력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 둘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도 충분할 것을 두 개의 긴 낱말을 반복적으로 나열해야만 하는 성가심을 덜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첫째로, 나는 투시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혹은 이런 일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확신시켜주려고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러한 사례들을 모아놓은 책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메스메리즘을 이용하여 스스로 실험해보거나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투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며, 그 가능성과 방법에 관한 정보를 반길 정도로 이 주제에 충분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내용들은 매우 면밀한 조사와 실험의 결과이며, 앞으로 이야기할 능력들 중의 일부는 그들에게조차 새롭고 신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직접 그 사례를 목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음을 다짐해 둔다.
둘째로, 가능한 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피하기는 하겠지만 주로 신지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 만큼, 그들이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간주할 수 있는 신지학 용어들은 글의 간결성을 살리기 위해서 별다른 설명을 달지 않고 가끔씩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 책자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그러한 용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나로서는 그들에게 다만 미안하게 생각할 뿐, 신지학의 기초적 저작들인 베산트 여사의 『고대의 지혜(Ancient Wisdom)』나 『인간과 인간의 신체들(Man and His Bodies)』 등을 참고하라고 일러줄 수밖에 없다. 사실 신지학의 전체적인 체계는 서로 너무나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그 여러 분야들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모든 용어들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투시에 관한 이 짧은 설명에도 신지학에 관한 장황한 논술을 서두로서 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투시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투시의 비전이 일어나는 여러 차원들과,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과 같은 몇 가지 일반적 사실들을 머리 속에 명확히 해두기 위해서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예비지식을 갖추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신지학 문헌들을 통해서 이러한 모든 고차적 능력들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유산으로 주어진 것임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예컨대 투시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으며, 이미 그 능력을 지닌 사람의 경우란 단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앞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로 들린다. 그들은 그러한 능력을 자신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것과도 절대적으로 다른 무엇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자신은 그러한 능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시란 자연계 속의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파동의 문제이며, 실제로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능력의 연장일 뿐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러한 비현실적인 느낌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공기와 에테르가 뒤섞여있는 대양(大洋) 속에 잠겨서 살고 있다. 에테르는 모든 물질뿐만 아니라 공기 속에도 침투해 있다. 그리고 감각에 미치는 인상(印象)들이 외부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은 주로 물질 대양 속의 파동을 통해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그러나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반응할 수 있는 파동의 종류가 실제로 거의 무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에테르마저 진동시키는 지극히 빠른 파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파동들 중에 인간의 망막이 반응할 수 있는 작은 부분―<지극히> 작은 부분―이 있다. 이 특정한 파동들은 소위 빛이라고 부르는 감각을 우리 속에서 일으켜낸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러한 특정한 종류의 빛을 발하거나 반사할 수 있는 물체만을 볼 수가 있다는 뜻이다. 동일한 이치로 우리 귓속의 고막은 상대적으로 느린― 매우 작은 범위의 특정 파동에 대해서 반응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그러한 특정 범위의 주파수로 진동할 수 있는 대상이 내는 소리에 한정된다.
양쪽 경우 모두 이 두 주파수 영역의 위쪽과 아래쪽에 무수한 파동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빛과 듣지 못하는 많은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학에 의해서 너무나 잘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빛의 경우에 이 위쪽과 아래쪽의 파동들의 작용은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있는 자외선과 반대편 끝에 있는 적외선이 일으키는 효과를 통해서 쉽게 감지된다.
사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파수의 파동들이 느린 소리의 파동과 빠른 빛의 파동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공간을 꽉 메우고 있다. 그것마저도 전부는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소리보다 느린 파동, 그리고 우리에게 빛이라고 알려진 것보다 더 빠른 무한히 많은 종류의 파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듣고 보고 하는 파동들은 실제적으로 무한한 음역을 가진 하프에서 선택된 몇 가닥의 줄과도 같은 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작은 부분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추론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만약 그 경이롭고 광대무변한 전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를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육체의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매우 적은 수의 파동들에 대해서조차 그 반응력은 사람에 따라서 상당한 (상대적으로 좁은 한계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희미한 물체를 볼 수 있다거나 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식의, 시력이나 청력의 예민한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감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 관한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질 좋은 이황화탄소로 만든 프리즘을 이용하여 흰 종이 위에 스펙트럼을 선명하게 비추어놓고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 경계선을 그어보도록 한다면 그들의 보는 능력에는 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보라색이 훨씬 더 멀리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어떤 사람은 아마도 붉은 쪽이 더 멀리까지 보이는 대신 그만큼 보라색 쪽이 다른 사람들보다 얇게 보일 것이다. 양쪽 다 보통 사람들보다 멀리까지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쯤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들이 우리가 예민한 ―실제로 일반적인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의 파동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류일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듣기에 있어서도 귀에 들릴 정도로 주파수가 높지 않은 소리―바로 경계 부분에 있는 저주파음―를 가지고 일정수의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그것을 들을 수 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동일한 차이를 시험해볼 수가 있다. 박쥐의 울음소리는 그러한 소리의 가까운 일례이다. 이 작은 동물의 바늘과도 같이 날카로운 울음이 공기를 가득 울리는 여름밤에 실험을 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무신경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공기나 에테르의 진동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는 엄밀한 한계란 없으며 우리들 중의 어떤 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은 영역의 반응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 그 능력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또 그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을 보고 듣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파동들이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해주시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동들이 매우 적은 양이라도 인간의 시계(視界) 내에 들어올 때 일어날 놀라운 결과에 대해서는 엑스선의 경우가 잘 예증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불투명하다고 여겨져 온 많은 물질에 대한 이 광선의 투과성은 최소한, 닫힌 상자 속의 글씨를 읽어낸다든가 인접한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다든가 하는 등에 동원되는 기초적인 투시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단번에 열어준다. 흔히 사용되는 파동에 추가하여 엑스선을 통하여 투시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누구든지 이 정도를 할 수 있게 되기란 쉬운 일일 것이다.
글 제 목 [투시] 투시란 무엇인가 1
작 성 자 문성호
제 1 장
투시란 무엇인가
투시(Clairvoyance)란 말의 자의(字義)적인 뜻은 ‘확연히 보는 것(Clear seeing)’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심히 왜곡되게 사용되어서 심지어는 시장판 약장사의 야바위 짓 따위를 의미하는 데 쓰이기조차 한다. 뿐만 아니라 좀더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 말은 질적으로 판이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두루 지칭하고 있어서 간단명료한 정의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투시를 ‘영적인 비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지만 이보다도 더 오해를 일으키는 표현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그처럼 고상한 이름으로 대접받을 만한 여지를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이것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투시는 매우 흔히(언제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지만) 투청이라고 부르는 능력, 즉 보통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수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이 제목을 투청능력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 둘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도 충분할 것을 두 개의 긴 낱말을 반복적으로 나열해야만 하는 성가심을 덜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첫째로, 나는 투시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혹은 이런 일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확신시켜주려고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러한 사례들을 모아놓은 책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메스메리즘을 이용하여 스스로 실험해보거나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투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며, 그 가능성과 방법에 관한 정보를 반길 정도로 이 주제에 충분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내용들은 매우 면밀한 조사와 실험의 결과이며, 앞으로 이야기할 능력들 중의 일부는 그들에게조차 새롭고 신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직접 그 사례를 목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음을 다짐해 둔다.
둘째로, 가능한 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피하기는 하겠지만 주로 신지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 만큼, 그들이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간주할 수 있는 신지학 용어들은 글의 간결성을 살리기 위해서 별다른 설명을 달지 않고 가끔씩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 책자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그러한 용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나로서는 그들에게 다만 미안하게 생각할 뿐, 신지학의 기초적 저작들인 베산트 여사의 『고대의 지혜(Ancient Wisdom)』나 『인간과 인간의 신체들(Man and His Bodies)』 등을 참고하라고 일러줄 수밖에 없다. 사실 신지학의 전체적인 체계는 서로 너무나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그 여러 분야들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모든 용어들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투시에 관한 이 짧은 설명에도 신지학에 관한 장황한 논술을 서두로서 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투시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투시의 비전이 일어나는 여러 차원들과,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과 같은 몇 가지 일반적 사실들을 머리 속에 명확히 해두기 위해서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예비지식을 갖추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신지학 문헌들을 통해서 이러한 모든 고차적 능력들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유산으로 주어진 것임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예컨대 투시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으며, 이미 그 능력을 지닌 사람의 경우란 단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앞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로 들린다. 그들은 그러한 능력을 자신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것과도 절대적으로 다른 무엇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자신은 그러한 능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시란 자연계 속의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파동의 문제이며, 실제로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능력의 연장일 뿐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러한 비현실적인 느낌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공기와 에테르가 뒤섞여있는 대양(大洋) 속에 잠겨서 살고 있다. 에테르는 모든 물질뿐만 아니라 공기 속에도 침투해 있다. 그리고 감각에 미치는 인상(印象)들이 외부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은 주로 물질 대양 속의 파동을 통해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그러나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반응할 수 있는 파동의 종류가 실제로 거의 무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에테르마저 진동시키는 지극히 빠른 파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파동들 중에 인간의 망막이 반응할 수 있는 작은 부분―<지극히> 작은 부분―이 있다. 이 특정한 파동들은 소위 빛이라고 부르는 감각을 우리 속에서 일으켜낸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러한 특정한 종류의 빛을 발하거나 반사할 수 있는 물체만을 볼 수가 있다는 뜻이다. 동일한 이치로 우리 귓속의 고막은 상대적으로 느린― 매우 작은 범위의 특정 파동에 대해서 반응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그러한 특정 범위의 주파수로 진동할 수 있는 대상이 내는 소리에 한정된다.
양쪽 경우 모두 이 두 주파수 영역의 위쪽과 아래쪽에 무수한 파동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빛과 듣지 못하는 많은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학에 의해서 너무나 잘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빛의 경우에 이 위쪽과 아래쪽의 파동들의 작용은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있는 자외선과 반대편 끝에 있는 적외선이 일으키는 효과를 통해서 쉽게 감지된다.
사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파수의 파동들이 느린 소리의 파동과 빠른 빛의 파동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공간을 꽉 메우고 있다. 그것마저도 전부는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소리보다 느린 파동, 그리고 우리에게 빛이라고 알려진 것보다 더 빠른 무한히 많은 종류의 파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듣고 보고 하는 파동들은 실제적으로 무한한 음역을 가진 하프에서 선택된 몇 가닥의 줄과도 같은 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작은 부분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추론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만약 그 경이롭고 광대무변한 전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를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육체의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매우 적은 수의 파동들에 대해서조차 그 반응력은 사람에 따라서 상당한 (상대적으로 좁은 한계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희미한 물체를 볼 수 있다거나 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식의, 시력이나 청력의 예민한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감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 관한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질 좋은 이황화탄소로 만든 프리즘을 이용하여 흰 종이 위에 스펙트럼을 선명하게 비추어놓고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 경계선을 그어보도록 한다면 그들의 보는 능력에는 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보라색이 훨씬 더 멀리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어떤 사람은 아마도 붉은 쪽이 더 멀리까지 보이는 대신 그만큼 보라색 쪽이 다른 사람들보다 얇게 보일 것이다. 양쪽 다 보통 사람들보다 멀리까지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쯤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들이 우리가 예민한 ―실제로 일반적인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의 파동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류일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듣기에 있어서도 귀에 들릴 정도로 주파수가 높지 않은 소리―바로 경계 부분에 있는 저주파음―를 가지고 일정수의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그것을 들을 수 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동일한 차이를 시험해볼 수가 있다. 박쥐의 울음소리는 그러한 소리의 가까운 일례이다. 이 작은 동물의 바늘과도 같이 날카로운 울음이 공기를 가득 울리는 여름밤에 실험을 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무신경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공기나 에테르의 진동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는 엄밀한 한계란 없으며 우리들 중의 어떤 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은 영역의 반응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 그 능력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또 그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을 보고 듣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파동들이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해주시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동들이 매우 적은 양이라도 인간의 시계(視界) 내에 들어올 때 일어날 놀라운 결과에 대해서는 엑스선의 경우가 잘 예증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불투명하다고 여겨져 온 많은 물질에 대한 이 광선의 투과성은 최소한, 닫힌 상자 속의 글씨를 읽어낸다든가 인접한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다든가 하는 등에 동원되는 기초적인 투시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단번에 열어준다. 흔히 사용되는 파동에 추가하여 엑스선을 통하여 투시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누구든지 이 정도를 할 수 있게 되기란 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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